오싹한 전생 이야기 008
도시 외곽 지하 보관소의 젖지 않은 발자국
이 글은 전생과 기억을 소재로 한 창작 괴담입니다. 실제 사건이나 장소를 특정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장소의 정확한 주소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도시 외곽 지하 보관소에서 있었던 일이라고만 했고, 자신이 과로로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으니 실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만 그날 휴대전화에 남은 시간과 동행자의 메시지는 지우지 못했다고 했다. 모든 일은 새벽 2시 02분, 복도 끝에서 젖지 않은 발자국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관리인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변 소리가 한 겹씩 사라졌다. 환풍기 진동, 빗물 떨어지는 소리, 자신의 발소리까지 멎었고 대신 성당 종과 공방 창문이 함께 떨리는 소리만 벽 안쪽에서 반복됐다. 손전등을 비추자 바닥에는 소금기가 밴 유리 부표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손을 대기도 전에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린 물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벽에는 연필로 “물이 돌아오기 전에 계단을 떠날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글씨는 오래되어 번졌는데 마지막 획만 방금 그은 것처럼 진했다. 그는 문장을 사진으로 찍으려 했지만 화면에는 글씨 대신 자기 뒷모습이 잡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보다 한 걸음 뒤에 또 다른 자신이 서 있었고, 그 뒤에는 허리가 굽었지만 걸음이 빠른 사서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도망치려고 돌아섰을 때 복도의 길이가 달라져 있었다. 분명 열 걸음이면 닿던 계단이 희미한 전구 수십 개 너머로 밀려났다. 문마다 같은 번호가 붙었고 문틈 아래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한 문 안쪽에서 어린 시절에만 쓰던 별명이 들렸다. 목소리는 돌아가신 가족과 닮았지만, 가족이라면 절대 틀리지 않을 억양 하나가 이상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 속 열쇠를 세게 쥐었다.
그때 젖지 않은 발자국이 한 칸 앞으로 움직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가까워졌고, 마침내 신발 끝에 닿았을 때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는 낯선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벽에는 지금의 얼굴을 한 오래된 단체사진이 걸려 있었고 사진 아래에는 현재 날짜보다 정확히 백 년 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사진 속 자신만 카메라를 보지 않고 방의 구석, 바로 현실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손잡이를 잡자 머릿속에 짧은 장면들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연기를 피해 같은 복도를 뛰는 모습, 잠긴 문을 두드리는 손, 누군가를 먼저 내보내려다 뒤에 남은 사람의 숨소리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소금기가 밴 유리 부표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다음번에는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순간 손잡이가 뜨거워졌고 반대편에서 수십 개의 손톱이 동시에 문을 긁기 시작했다.
그는 경고문을 떠올리고 정해진 행동과 반대로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소리가 가장 큰 문이 아니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문을 골라 세 번 두드린 뒤 기다렸다. 문이 스스로 열리자 원래의 계단이 나타났다. 뒤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1층 현관을 빠져나온 순간 휴대전화 시간이 새벽 2시 02분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멈춰 있던 비도 한꺼번에 쏟아졌다.
다음 날 관리인에게 확인하니 그 층에는 복도가 그렇게 길게 이어질 공간이 없다고 했다. 더 이상한 것은 전날 그와 함께 왔던 동행자가 “나는 입구에서 기다렸고 당신은 혼자 들어갔다”고 말한 점이었다. 그런데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동행자의 번호로 “뒤에 있는 나는 보지 마”라는 문장이 열세 번 와 있었다. 통신사 기록에는 그 메시지가 발송된 흔적이 없었다.
이후 그는 같은 시간에 알람이 울리면 반드시 불을 켜 두었다. 몇 달이 지나 아무 일도 없자 사진을 정리했는데, 문제의 복도를 찍은 마지막 사진 한 장이 새로 생겨 있었다. 사진 속에는 닫힌 문과 젖지 않은 발자국이 보였고 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와 있었다. 확대하자 종이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네가 문 밖에 있으니, 안에 있는 우리가 나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