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전생 이야기 070
철거 예정인 극장 분장실의 한 칸씩 가까워지는 빈 상자
이 글은 전생과 기억을 소재로 한 창작 괴담입니다. 실제 사건이나 장소를 특정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장소의 정확한 주소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철거 예정인 극장 분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만 했고, 자신이 과로로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으니 실명을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다만 그날 휴대전화에 남은 시간과 동행자의 메시지는 지우지 못했다고 했다. 모든 일은 새벽 4시 19분, 복도 끝에서 한 칸씩 가까워지는 빈 상자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관리인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주변 소리가 한 겹씩 사라졌다. 환풍기 진동, 빗물 떨어지는 소리, 자신의 발소리까지 멎었고 대신 약탕기 뚜껑이 가볍게 떠는 소리만 벽 안쪽에서 반복됐다. 손전등을 비추자 바닥에는 쑥 냄새가 밴 작은 절구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손을 대기도 전에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린 물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벽에는 연필로 “장부의 빈칸에 이름을 쓰지 말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글씨는 오래되어 번졌는데 마지막 획만 방금 그은 것처럼 진했다. 그는 문장을 사진으로 찍으려 했지만 화면에는 글씨 대신 자기 뒷모습이 잡혔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보다 한 걸음 뒤에 또 다른 자신이 서 있었고, 그 뒤에는 허리가 굽었지만 걸음이 빠른 사서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도망치려고 돌아섰을 때 복도의 길이가 달라져 있었다. 분명 열 걸음이면 닿던 계단이 희미한 전구 수십 개 너머로 밀려났다. 문마다 같은 번호가 붙었고 문틈 아래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한 문 안쪽에서 어린 시절에만 쓰던 별명이 들렸다. 목소리는 돌아가신 가족과 닮았지만, 가족이라면 절대 틀리지 않을 억양 하나가 이상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 속 열쇠를 세게 쥐었다.
그때 한 칸씩 가까워지는 빈 상자이 한 칸 앞으로 움직였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가까워졌고, 마침내 신발 끝에 닿았을 때 주변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는 낯선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벽에는 지금의 얼굴을 한 오래된 단체사진이 걸려 있었고 사진 아래에는 현재 날짜보다 정확히 백 년 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사진 속 자신만 카메라를 보지 않고 방의 구석, 바로 현실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손잡이를 잡자 머릿속에 짧은 장면들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연기를 피해 같은 복도를 뛰는 모습, 잠긴 문을 두드리는 손, 누군가를 먼저 내보내려다 뒤에 남은 사람의 숨소리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쑥 냄새가 밴 작은 절구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다음번에는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순간 손잡이가 뜨거워졌고 반대편에서 수십 개의 손톱이 동시에 문을 긁기 시작했다.
그는 경고문을 떠올리고 정해진 행동과 반대로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소리가 가장 큰 문이 아니라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문을 골라 세 번 두드린 뒤 기다렸다. 문이 스스로 열리자 원래의 계단이 나타났다. 뒤에서 누군가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1층 현관을 빠져나온 순간 휴대전화 시간이 새벽 4시 19분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멈춰 있던 비도 한꺼번에 쏟아졌다.
다음 날 관리인에게 확인하니 그 층에는 복도가 그렇게 길게 이어질 공간이 없다고 했다. 더 이상한 것은 전날 그와 함께 왔던 동행자가 “나는 입구에서 기다렸고 당신은 혼자 들어갔다”고 말한 점이었다. 그런데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동행자의 번호로 “뒤에 있는 나는 보지 마”라는 문장이 열세 번 와 있었다. 통신사 기록에는 그 메시지가 발송된 흔적이 없었다.
이후 그는 같은 시간에 알람이 울리면 반드시 불을 켜 두었다. 몇 달이 지나 아무 일도 없자 사진을 정리했는데, 문제의 복도를 찍은 마지막 사진 한 장이 새로 생겨 있었다. 사진 속에는 닫힌 문과 한 칸씩 가까워지는 빈 상자이 보였고 문 아래로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와 있었다. 확대하자 종이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네가 문 밖에 있으니, 안에 있는 우리가 나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