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기록 · 기억과 해석

낯선 역의 안내 방송

비가 멎지 않던 화요일 저녁, 나는 평소보다 두 정거장 앞에서 열차를 내렸다. 환승 안내 방송이 지연되고 사람들이 계단 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플랫폼 끝에서 우산의 물기를 털다가 낯선 역 이름을 들었다. 발음은 네 음절이었다. 마지막 음절은 열차 문이 닫히는 소리에 묻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름을 한 번 더 들으면 다음에 어떤 안내가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 메모장에 들린 소리를 적었다. 정확한 표기를 몰라 세 가지로 썼다. 첫 번째는 내가 확실하게 들은 두 음절, 두 번째는 그 뒤에 붙었을 것 같은 음절, 세 번째는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표기였다. 메모 아래에는 “전에 와 본 역 같다”라고 썼다가 “낯익게 느껴졌다”로 고쳤다. 실제 방문 기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있었다는 말은 적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그 이름을 검색했다. 첫 번째 표기는 어느 카페 이름으로, 세 번째 표기는 오래된 소설의 지명으로 나왔다. 소설 표지에는 좁은 플랫폼과 파란 봉투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책을 열기도 전에 봉투를 손에 든 사람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점심시간에 어제의 메모를 다시 읽고서야 파란 봉투는 처음 떠오른 기억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표지 이미지를 본 뒤에 내 머릿속에 들어온 장면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메모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플랫폼에서 방송을 들었다. 이름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 낯익다는 느낌이 있었다”는 첫 칸에 썼다. “파란 봉투를 든 사람, 기다리는 장면, 소설 속 역과 나의 연결”은 두 번째 칸에 썼다. 첫 칸은 그날 겪은 일에 가깝고 두 번째 칸은 나중에 붙인 이야기였다. 두 칸을 나눴다고 해서 당시의 떨림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더 선명해졌다.

주말에 어머니에게 역 이름을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 비슷한 이름의 작은 역을 지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앨범에는 여행 사진이 있었지만 역 표지판은 없었다. 내가 그곳을 기억한 것인지, 어머니의 옛 이야기만 기억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세 가지 가능성을 모두 적어 두었다. 뜻밖의 낯익음이 전생에서 왔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그 한 가지 설명만 붙잡고 싶지는 않았다.

앨범을 정리하다가 그 여행에서 아버지가 찍어 준 내 사진을 찾았다. 사진 속 나는 역이 아니라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옥수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과거의 비밀보다 가족과 함께한 평범한 하루가 더 궁금해졌다. 다음번에 낯선 장소가 익숙하게 느껴지면 서둘러 정답을 찾기보다, 처음 떠오른 장면을 먼저 적고 나중에 생긴 이야기는 다른 색으로 표시해 보려고 한다.